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여 조직위원장 질 자콥이 직접 제작과 편집을 맡은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거장 35명의 감독이 33편의 단편을 만들어 모아진 옴니버스 영화다.
원칙은 ‘영화관’ 하면 떠오르는 느낌을 주제로 삼고, 3분이어야 하며,
감독들은 각자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 외에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로 개구쟁이 같은 원칙이 아닐 수 없다.
누구 누구가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지 지켜보자는 심보도 있겠고,
단 3분안에 어떻게 요리해낼 것이냐고 약올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거장이었고 익살스런 원칙에 '아랑곳하지 않는' 단편들을 만들어냈다.
단 한편도 오버랩되지 않은 채...
레이몽 드파르동 Raymond Depardon 감독의 영화관...(사진작가, 저널리스트, 영화감독)
오랜 시간을 두고 프랑스 농부의 삶을 관찰한
<농부의 초상 (Profils Paysans: Le Quotidien, 2005)>의 3부작 다큐로 유명하다.
그는 영화에서 평범한 영화관의 풍경을 그렸다. 그 어떤 장치도 없이... 스토리도 없이...
기타노 다케시 Takeshi Kitano 감독의 영화관
언젠가 그의 영화들을 리뷰할 날이 오겠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명문사립대인 메이지 대학을 나와 김구라와 같은 신랄한 독설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이후 코미디언, 배우, 감독으로서
화려한 행보를 걸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구라처럼 인물 중심의 비아냥이 아닌, 상식과 관습에 대한 독설이었다는 것)
이번 단편에선 그의 스타일... 하나비를 통해 얻은 '기타노 블루'라는 신조어에 걸맞지 않은 소소한 유머를 사용했다.
보는 3분 동안,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유쾌하면서 따뜻하고, 사람스럽다...고 느껴지는 재담.
테오 앙겔로플로스 Theo Angelopoulos 감독의 영화관
웅크리고 있는 남자는 앙겔로풀로스의 1986년작 <비키퍼> 속 '마르첼라 마스트로얀니'다.
1996년 이미 사망한 그와 쥴앤짐에 출연했던 '잔느 모로'가 마치 3분 속 영화에서 같이 연기하는 것처럼 편집했다.
그녀는 사랑과 삶에 대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의 대사를 빌려 읊조린다.
나는 그 대사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도 없어요?
마르첼로!
오늘 아침에...
내가 깼을 때
당신은 아직 자고 있었어
당신의 깊은 숨소릴 들었지
또,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당신 눈을 봤어
감정이 격해져
숨이 막힐 뻔 했어
당신 얼굴 너머로
뭔가를 봤어
순수하고...
더 심오한...
거기에 내 모습이 투영됐어
나 자신을 본거야
그 속에...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있었어
모든 지난날이 거기 있었어
또 당신을 모르고
살아온 나날들...
당신을 알기 위한 날들이 있었어
바로 그 순간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어
그 느낌이 너무도 강렬해서
머릿속이 눈물로 가득 차올랐어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Andrei Konchalovsky 감독의 영화관
씨네21의 정재혁기자는 이 단편을 두고 '고전과 오락의 어울리지 않는 동석이다.'라는 표현을 썼더랬다.
코카콜라와 펠리니...
(역시 영화평론가든 영화평론기자든 그들은 진정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기똥찬 지적이라는 말씀!)
난니 모레티 Nanni Moretti 감독의 영화관
그의 영화 중 가장 많이 알려지고, 수작으로 일컬어 지는 아들의 방 (La Stanza Del Figlio, 2001)을 통해
그의 모든 영화를 이해하려 한다면 우선 멈춰서야 한다.
보는 내내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남들이 가져가는 잔잔한 감동 하나 챙기지 못했지만,
영혼을 만지작 거리려고 가슴 한 구석이 싸해지는 엔딩에
심장에 손을 넣어 어루만지는 듯한 메인 테마곡 (Brian Eno의 By This River - 지금 배경음악으로 듣고 계심)
에 흐르는 눈물하나 훔칠 여유가 없었지만....
그가 만든 이 걸작은... 마치 그의 영화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난니 모레티는 실로 개구쟁이이면서 신랄한 투덜이 스머프이고, 한 놈만 패는 고집쟁이다.
그의 나머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즐거운 일기, 4월, 악어...
'나의 즐거운 일기' 중 제니퍼 빌즈를 만나 수줍게 농을 건네는 장면에선 살짝 설레기도 했다.
그의 스쿠터는 나의 지난 애마 정명이를 떠올리게 하며 피식 웃음이 나게 하였고,
살짝 지루하기까지한 그의 수다스러움은 두번 고쳐 쓰지 않는 낙서같았다.
'악어'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가 삽입되지 않았다면...
그가 말하려고 하는 이탈리아 정치현실이 무엇이건 간에 화면을 꺼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들의 방을 만든 감독에 대한 경외의 표시로,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에 취해 잠시... 멍하게... 있었더랬다.
(그의 배경음악에 대한 조예는 훔... 정말... T^T)
그는 다만
AC 밀란의 구단주이자 이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조롱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이탈리아의 우디알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영화를 위한 감독이라기 보단, 자신의 사상을 위한 영화를 만든달까...
물론 그것은 창조자의 몫이자 권리이겠지만...
아들의 방을 만들 즈음
아들을 얻은 그는...
역시 아들의 얘기를 꺼내며 짧은 단편을 끝낸다.
허우 샤우시엔 Hou Hsiao Hsien 감독의 영화관
비정성시 (A City Of Sadness, 1989)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허우 샤우시엔 감독은
(사실적으로다가... 양조위의 연기를 더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지만... 꾹!)
섣불리 움직이지 않은 카메라와 불행과 무게감의 느린 진행에 대해...이렇게 변명하였다.
“여백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결코 빈 공간이 아니다.
한 공간에는 그곳을 스쳐간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흔적이 남아 있다. 난 그것을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의 단편은 '단 하나의 트릭을 부렸지만 똑같은 영화'라는 악평을 받았다고 한다.
여튼 꿈보다 해몽에 준해서 나의 평을 덧붙이자면...
현실과 영화와 여백과 세월은 각자 엇갈린 혹은 꼬인(?) 실타래라서...
괴리감이 없을 수 없다!! 뭐 그런 의도 아니겠어?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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