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영화를 언급하기 전에... '지화자' 한번 외치고 가겠다.
크리스토퍼 도일(Christopher Doyle)..
왕가위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찍은 촬영감독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장이모 감독의 <영웅>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
이렇듯 '피부병을 앓은 중국인'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중국과 대만에 인연이 많은 그는
'첨밀밀'에서 알코올중독의 영어강사역을 맡아 배우로 출연했던 그 감각을 이용해
파라노이드파크에서도 초반부에 토미 아저씨역에 잠시 얼굴을 내비친다.
거스 밴 샌트 감독과는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 2006) 이 후 두번째 호흡이다.
그의 유희에 접근하기 위해선 인내의 면에서 웅숭깊은 데가 있어야 한다.
실험의 처음은 늘상 지루하고 답답하기 마련이니까...
그가 실험하고자 했던 것이 '죽음'이라면 그 처음은 게리(Gerry, 2002)다.
커시 애플랙, 맷 데이먼이 나온다해서 뭔가 <굿윌헌팅>처럼 헐리우드적인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무언가 남들이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 보겠다고 눈을 부릅뜨지 않는 이상, 느린 음색과 단조로운 영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 밖에 없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그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되새김질이 지나쳐 의도하지 않은 토악질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아니라면 <아이다호> 이후... '길'에 대해 뭔가 더 추가하고 싶었던 추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가 나오자 이것이 일종의 실험이며...그만의 시리즈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평론가들은 이를 더러 죽음의 3부작이며, 파라노이드 파크는 그 대단원에 놓인 어떤 후기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가 사용한 소재는 단 두가지... 죽음과 청년...
두가지 제시어가 주어지고, 매번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퀴즈를 풀고 있는 것처럼
그는 90도씩을 회전해가며 각각 다른 죽음에 대해, 다른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청년의 입을 빌어...
주인공 알렉스(엘리펀트의 주인공 이름과 같음)역을 맡은 게이브 네빈스는 '보티첼리 그림의 미소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깡마르고 신비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여자친구 제니퍼와 첫 섹스씬에서 보여진 그의 몸은 멋지고, 건강하다기보다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성별이 모호한 천사처럼 비친다.
거스 밴 샌트 감독은 '죄'라는 추악한 사실 앞에 미소년을 들이 미는 것을 좋아한다.
몬스터의 에일린 워노스처럼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죄를 저질렀을 때의 관객이 가지는 편견을 배제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영화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는 '미'에 대한 추구일 수도 있고...
그 '미'에 취해 '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관객을 조롱하기 위함일 수도, 그의 단순한 취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알렉스의 건조하면서도 신비한 표정과 군더더기 없는 행동을 쫓아가다보면... 어느덧 그의 입장이 되어버린다.
(게이브 네빈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분장하는 사람이 그가 실제로 입고 다니던 옷을 가져가서 활용했다고 한다.
그는 알렉스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내면연기를 이미지화해내는 것이 힘들었을 뿐... 바로 자신을 보여주었다고...)
우리에겐 양심이 있다.
죄를 지으면... 오금이 저리고, 손발이 떨리고, 사소한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사람들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알렉스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그 죄라는 것이 느닷없이 찾아온 우연이었고... 악의가 전혀 없었던 찰나의 실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큰 규목은 강한 태풍에 부러지지만, 대나무는 세차게 흔들리기만 할뿐이다.
잘 완성된 도자기는 망치질 한번에도 쉽게 깨져버리지만, 아직 그 무엇도 되지 않은 찰흙은 모양만 변형될 뿐이다.
살인이라는 죄를 짓고도 태연한 알렉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는 대나무이고 찰흙이다...
어떤 변형과 파행이 그를 기다릴지 몰라도... 그가 태연함을 택한 건 아직 설익은 10대였기 때문이다.
어느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기에... 그것을 등에 지고 가야하는 그는 그제야 어른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소리 없이 그를 관망해야 하는 입장에선...
그가 태우는 노트가 그가 태우는 젊음이고, 그가 버리는 동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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