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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bin, 2011)

감독 린 램지(Lynne Ramsay)

각본(원작자) 라이오넬 슈라이버(Lionel Shriver)

2017년 70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일어난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영화를 본 후 떠오른 건 딱 하나였다.

그래서 각본의 칼날이 향한 곳은 엄마인가, 아들인가.

 

 

STILLCUT

 

 

 

관객을 좀 더 목적하는 곳으로 이끌려는 감독의 시도는

영화 한나(Hannah, 2017)보다 성공적이었다.

결론에 이르러서야 전반적인 암울함의 이유를 알게 되지만

'한나'의 경우엔 그 결론에 이르는데 여러 나날이 필요했다.

몰입도가 부족했다기 보단, 과도한 침묵이 나의 호기심 유발에 실패한 까닭이다. 

 

반면 이 영화는 감독이 준비한 10분의 반전이 꽤 괜찮았다.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시달리다 못해 부대끼길 바란 의도가 정확하게 들어맞은 셈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 '생존'을 위한 나쁜 행동은 정당화되진 않았지만 실제로 자행되어왔다.

그것이 잔혹한 친족 살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처벌은 해도 이해는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생존에 둔다면

굶어 죽을 리 없는 지금의 시대에

'살인'라는 죄목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Melanie Klein이 말한 편집-분열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에서 보면,

 

생후 3~4개월에 유아는 좋고 나쁨을 규정하지 않고

자신의 position을 대상에게 location 시킨 후

그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위치를 찾아간다고 한다.

 

결국 악한 것이 자신의 내부에 있으면 그것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기 때문에

본능적 공격성의 일부를 외부로 투사해서 '나쁜 젖꼭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름끼치는 사실 하나는 생후 3개월의 천사같은 아이의 DNA도 

자신의 번식을 위해 절대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쪽을 택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케빈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엄마를 경멸하는 눈빛...

 

자신의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파괴할 수 없었던 케빈이 택한 투사의 대상,

엄마와의 그 거리, 그 확고한 자리매김...

 

 

물론,

 

적절한 모성으로 그 아이의 좋은 젖꼭지가 되어 줄 수 없었냐고 비난할수도 있겠고,

케빈의 '악'이 표준의 가치를 벗어나는 것이었다고 책잡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세상 그 누구를 죽일 수 있어도,

엄마라는 존재만은 자신의 악행을 관찰하길 바란 케빈을 보며

모든 것은 지독한 복수라기 보단, 그 아이가 평생 해오던 '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거슬린 건 엄마인 에바의 선택이었다.

 

케빈에 대하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엄마로 시작하지 않았으나

끝에서는 엄마로 남으려는 억지스러움.

 

제대로 된 증언으로 <영예로운 고독>을 택하지 않고,

케빈의 심리적, 공간적 울타리 내에 머물며 그 어정쩡한 '엄마놀이'를 계속 해내가는 것이

오뉴월 산살구를 먹은 듯 떫지 않던가.

 

로빈 후드 책을 책장 위에 가지런히 놓으며 에바는 생각한 듯했다.

 

구관이 명관이니

세상이 보내는 차갑고 모진 눈빛보단

울어대지도 않고, 수시로 똥을 싸대지도 않는

케빈의 무딘 눈빛이 그나마 낫지 않겠냐고...

 

저 악마에게도 엄마는 필요하고

또 누군가 죽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본인은 아닐테니까...

 

 

현대를 사는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건

결국 '관계'를 맺을 누군가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미숙한 모자 놀이는 피해자의 원성따위 관심이 없다고 치더라도

그럼 우린 언제까지 '악마'의 탄생을 DNA의 무한 증식의 필연적 돌연변이로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질 경우

생물학적 '생명' 또는 '존재'의 개념은

기계 속 무한 코드로 들어가 <완벽>을 꿈꿀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언젠가 집채만한 칩 안에서 탄생할 새로운 종족은

완벽한 '선'을 행할 예수들만 가득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