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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다섯째 아이 (The Fifth child) - 도리스 레싱

시간이 많아지면 책 속에 파묻혀 지낼 것이라 다짐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요즘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글보단 영상이 편하고, 음성이 이해하기가 쉬워서다.

내 상상력이 늙어가고 있어서인지

요즘 영화 CG들이 내 상상력을 벗어나서 인지는 알 수 없다.

 

더이상 나태했다간 애써 만들어 놓은 내 신경회로들이

사라질지 모를 일이라 힘들게 서재로 갔다.

 

<다섯째 아이>

 

2시간에 다 읽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도 대단했지만, 

스토리의 참신함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것을 알고,

그 이유가 가족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보여주고,

소설의 토대가 되는 기준이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서술 기법이 극도로 사실적이어서 섬뜻할 정도라는 것도 충분히 공감했다.

 

실제로 나 역시 두 번 읽지 않았다면 그렇게 썼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은 이 책을 착안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다고 말했다.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지금 우리에게도 내려오고 있다는 한 인류학자의 글>

<정상적인 세 아이를 낳은 뒤 태어난 네번쨰 딸 때문에 다른 아이를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한 어머니의 잡기 기고문>

그런 이유로 이 책을 1980년대 영국의 정치적 비유나 우화로 읽지 말것을 당부했다고 했다.

 

'괴물' 벤의 시작을 살펴보자.

도리스 레싱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상한 아이'는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거라고...

그 이상한 다섯째 아이 벤은 태아 12주부터 태동을 시작해 임신 기간 내내 엄마인 해리엇을 괴롭힌다.

극심한 통증으로 진정제를 과다 복용해야 했던 해리엇은

고작 한뼘도 되지 않는 태아를 '괴물'이라 처음으로 인지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해리엇의 관점이다.

 

정상적인 네 명의 아이들 육아에서 이미 소진될 때로 소진된 육체와

늘 임신을 축복하던 남편 데이비드의 5섯째 아이에 대한 거부감.

결국 정신과 육체가 임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고,

경제적으로도 4명의 아이들까지가 그 부부가 겨우겨우 감당할 수 있는 한계였던 것이다.

다섯째 아이의 출연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 바늘을 갖다대는 것과 같았다.

태어나서 쥐죽은 듯이 잠만 자고,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고, 돌봄 없이도 정상적인

발달단계를 수행해나가는 아이가 아니고선

이 가족의 붕괴는 이미 예상되었다는 뜻이다.

 

해리엇은 임신 12주에 그 아이의 태동을 느끼게 되자

- 사실, 임신 12주는 태동을 느낄 수 없는 시기다.

태아는 고작해야 5센티 정도 되는 크기라 제 아무리 슈퍼베이비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스트레스가 하나의 통점으로 모여들게 된다.

'탓'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다산 때문에, 예민해진 심리때문에, 약해진 체력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유발될 수 있는 통증이었다.

자궁에 괴물이 들었다고 인식하는 순간

그 아인 자신의 일부가 아닌 '이물질' 되버리는 것이다.

 

아이의 지능은 절반은 자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아이의 정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엄마의 그릇된 인식 외에도

괴물 벤을 만든 게 또 있다.

 

<진정제>

통증을 없애기 위해 처방받은 진정제를 먹기 시작한 해리엇은

점점 벤의 태동을 소스라칠 정도로 싫어하는 지경에 이르러

의사가 권한 양 이상으로 과다복용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이 발간된 '1988년'에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980년대는 의학서적의 두께가 지금의 3분의 1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특히 산과학이 그랬다.

약물의 위험성을 모르던 시절이었고,

알아도 크게 경고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의사는 해리엇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을 처방한다.

하지만 여기서 해리엇은 역시

그 약을 <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고 판단한다.

주체가 병적인 자신이 아니라 괴물인 벤을 향한 것이다.

또한

해리엇은 어마어마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해 막달에 들어서는 닥치는 대로 먹는다.

당연히 벤은 식이조절에 실패한 해리엇의 도움으로

11파운드(평균 7파운드)의 엄청난 무게로 태어났다.

 

벤은 과연 몰랐을까?

자신의 엄마가 본인을 혐오스러워하고 있고,

손톱으로 자궁을 할퀴고 있는 괴물이라 여기는 것을...

엄마의 심장 밑에서 10달을 지내는 동안

단 한번의 케어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는데

정말 몰랐을까?

 

이후에 일어나는 벤의 기형적인 행동들은 예상하는대로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이고, 발달장애가 있으며, 소통이 불가능했다.

 

 

지금의 시대에도 저런 산모는 존재한다.

마약을 하기도하고, 알코올 중독에, 흡연, 영양실조...

연약한 태아를 향해 태교는 커녕

폭력적 언행과 부주의한 행동들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아이는 일부는 유산될 것이고,

일부는 태어나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해결방법은 없다.

인권에 막히고, 윤리에 부딪혀

그러지 말라고, 그래선 안된다고 그들에게 강제할 수 없으니까...

 

 

태아를 '괴물'로 만들고 있는 산모들이

수용될 수 있는 감옥이 있다면 어떨까.

적어도 10달은 배불리 먹여주고,

약과 술과 담배와 정크푸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태교 음악을 듣고

누구로부터의 폭력에도 노출되지 않도록하는 

최상의 시설을 갖춘 감옥.

 

 

아이들이 '괴물'로 만들어지지 않도록...

적어도 자신의 모체로부터는 '괴물'로 불려지지 않도록...

 

가족의 이데올로기가 붕괴되었다면,

아직 붕괴되지 않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