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

피임의 역사 (2)

Wednesdays 2010. 11. 7. 11:30

1. 자유주의 시대
1875

 



수정 과정의 신화가 풀리다
수 백 년 동안 수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질까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해 왔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 과정에 남성의 정액만이 유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던 굳은 확신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전반 여성 난자의 존재가 최초로 확인되었고 수정된 난자 세포가 또한 이 무렵에 발견되었다.
1875년 독일인 생물학자 헤르트비히(Oskar Wilhelm August Hertwig )는 최초로 수정 절차를 관찰했다. 그는 성게의 번식을 연구하면서 정자가 난자를 통과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관찰을 통해 그는 정자와 난자 세포의 핵이 결합되어 수정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2. 제국주의 시대
1880

고무 페서리

고무의 경화공법을 통해 고무의 내구성이 커지자 1880년대 페서리가 발명되게 된다.
페서리란 용어는 그리스어(diaphragma)로 칸막이 혹은 장벽이라는 의미이며 라틴어(pessare)로는 통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페서리는 얇은 돔 형태의 막으로 되어 있는데 자궁경부를 막을 수 있도록 여성의 질에 삽입한다. 페서리는 정자가 자궁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난자와 만날 수 없게 하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오늘날 페서리는 고무나 기타 인공 재료들로 만들어지며, 개별 여성에 맞게끔 제작된다. 이 방법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살정제(spermcide)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다.

 


 



1881
최초의 여성불임수술

1881년 최초의 여성불임수술이 북아메리카 룬드그랜에서 실시되었다. 이 수술은 자궁에서 약 2.5cm 떨어진 나팔관 부분을 잘라서 실로 꿰매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면 난소에서 자궁으로 통하는 난자 세포의 이동 통로가 막히게 된다.
오늘날 많이 시행되는 불임수술로는 나팔관을 태우는 열응고시술(thermocoagulation)과 클립으로 막는 시술이 있다.
수술을 통한 불임은 회복되기 어렵다. 한번 시술되면 영구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술 전에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1891

남성 호르몬과 근육발달

 

1891년 러시아의 한 동물 연구가는 고환에서 추출한 물질을 처방하면 소변에서 배출되는 질소의 양이 감소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변에서 질소의 양이 적어진다는 것은 몸에서 근육 등의 발달에 필요한 단백질을 엄청나게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20세기 초 러시아계 프랑스인 S. 보로노프(Serge Voronoff )는 고환에 있는 남성 호르몬이 단백질 생성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입증하게 된다. 그는 원숭이의 고환을 노인에게 이식했다. 고환을 이식 받은 노인의 근육이 다시 활발히 생성되었으며 노인은 원기를 회복했다. 1920~1940까지 보로노프와 그의 연구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실험을 2천 회 넘게 실시하였다. 

 

 



3. 아르누보(유겐트스틸) 시기
1895

 

렌들의 좌약 “부인의 친구(Wife’s Friend)”

 

19세가 끝날 무렵부터 여성들은 살정제(spermicide)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교 전후에 여성들은 질 세정제로 비눗물, 식초 및 기타 화학 약품들을 사용하였다. 또한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들은 키니네제와 코코아버터를 혼합한 물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혼합 물질들 중에서 유명한 것이 렌들(Rendell)이 개발한 키니네제 좌약이었다. 영국의 화학자이자 제약업자였던 렌들이 키니니제를 함유한 수용성 페서리 개발하여 1880년경부터 영국에서 생산하였다. 그는 이 제품을 이미 자식을 많이 낳은 극빈층 가정의 주부들에게 배포했다.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자 렌들은 이 좌약의 생산에 매진했다.

 

1896

임신에 영향을 주는 황체
1897년 스코틀랜드의 발생학자 J.비어드(John Beard)는 난소에서 발견되는 황체(Corpus Luteum)가 임신에 필요한 물질을 혈류 속으로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 당시 비어드는 임신과 출산이 가져오는 생체학적 변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황체가 임신 과정에서 난소의 역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임신이 되면 더 이상 배란이 되지 않도록 한다고 믿었다.

 

 

1900

성 기능을 조절하는 호르몬

1890년 오스트리아의 부인과 의사인 E. 크나우어(Emil Knauer)는 성적으로 성숙한 생쥐, 쥐, 모르모트 등의 난소를 성적으로 미성숙한 암컷에게 이식하여 이식을 받은 동물들이 성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를 토대로 크나우어는 난소가 만들어내는 어떤 물질이 이러한 여성스런 변화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거세를 통해서 성적 기능이 사라지는 현상 등을 난소 이식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연구는 난소에서 나오는 물질들이 성적 기능들을 조절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1903
임신에 양분을 제공하는 황체

1903년 토끼 실험을 통해 발생학자 L. 프랭켈(Ludwig Fraenkel)은 황체가 제거되는 즉시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착상과 임신의 유지 과정에서 황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오늘날 황체는 모든 포유류의 임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을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황체는 성숙한 난자를 싸고 있던 세포로부터 생성되어 배란 이후에 발달한다. 임신 과정에서 프로게스테론은 태반에서 흡수된다.

 

 

 

 

4. 1920년대 황금기

1920


이식된 고환이 다시 젊어지게 하다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E. 스타인나흐(Eugene Steinach)는 회춘에 관한 실험으로 세간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켰다. 1920년 여름 동물 실험에만 그치던 고환이식을 인간에게서도 성공 시켰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식의 극적 효과를 보고했다.  

“이 실험에서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거세가 되면 노화와 관련 된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육의 쇠퇴, 피로, 일에 대한 거부감, 타성, 무관심, 기억감퇴, 성욕감퇴 등의 현상이 발생했다. 이식이 이뤄지면 이런 증상들과는 정반대의 현상들이 천천히 나타나며, 젊은 시절의 신체적 육체적 상태가 회복된다. 그리고 신체 및 성적 기능이 젊어지는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근육이 단단해지고, 얼굴, 가슴 및 허벅지 등에 털이 자라고, 거세된 남자에서 성기가 자란다. 결혼도 할 수 있고, 일상의 일들을 완벽히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처치를 받은 환자들 중 한 명은 지금까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이 시술로 원기를 되찾아 4년 반 이상 동안 열심히 일하고 있다. 주의 깊게 봐야 할 또 한 명의 환자가 있는데 그에게 남성스러움이 되살아났고, 성기능을 상실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성적 욕구가 다시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이 당시 연구자들은 이미 테스토스테론이 신체 건강과 활동에 있어 중요한 물질 생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의 중요한 물질이 남성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사실이 몇 년 후에 명확하게 밝혀졌다.

 

 

1921
수정 능력을 조절하는 황체

1921년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L. 하버란트(Ludwig Haberlandt)는 임신한 쥐의 난소를 성적으로 성숙하지만 임신하지 않은 쥐에 이식했다. 이식을 받은 쥐는 곧 불임이 되었다.

하버란트는 이 결과의 원인을 이식된 난소에 있는 황체가 생성한 물질에서 찾았다. 1922년 초 그는 동물의 암컷뿐만 아니라 여성도 일시적인 불임을 만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적출법(extraction)”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어떤 것을 번식 실험의 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였다. 하버란트의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은 2차 대전 초반 독일인 발생학자 비켄바흐(Bickenbach)와 폴리코빅(Paulikovics)의해 입증되었다.
하버란트의 발견은 수많은 학자들의 선행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897년 독일인 의사이자 해부학자였던 요하네스(Robert Heinrich Johannes Sobotta)는 난소에서 난자의 성숙이 이뤄지고, 배란 이후에는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들에게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포들은 배란 전에는 과립층대(zona granulosa)라고 불리고, 배란 이후에는 황체(corpus luteum)라고 불린다. 1897년 스코틀랜드의 발생학자 J. 비어드는 임신의 주체에 관한 논문을 통해 임신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관한 글을 썼다. 그의 주장은 황체가 난소에 영향을 미쳐서, 임신 이후에 더 이상 배란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프랑스인 조직학자 A. 프레낭(Auguste Prenant)은 황체가 내분비 과정을 통해서 배란을 막는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들은 하버란트가 호르몬 피임법을 개발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나중에 실행된 수많은 동물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이 연구들의 결과는 입증되었다.

 

 



1923
에스트로겐 테스트 개발

 


미국의 생리학자 E. 알렌(Edgar Allen)과 생화학자이자 생리학자인 E.A. 도이지(Edward Adalbert Doisy)는 공동 연구를 통해서 최초로 에스트로겐 테스트를 개발하였다. 알렌과 도이지는 동물의 난소에서 추출한 물질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추출한 이 물질을 불임 쥐에 주사하여 이 물질들이 질 속의 점액막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였다.
질 속의 점액막은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소에서 생성된 에스트로겐은 이 점액막 층의 구조와 점성을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의사들도 여전히 여성 호르몬의 수치를 파악하기 위해 질 속의 세포층을 분석한다.

 

 


1927

성호르몬 연구



1927년 S. 아쉬하임(Selmar Aschheim)과 B. 존드(Bernhard Zond)는 성숙한 난자(난포호르몬)에서 얻은 다량의 호르몬이 임신한 여성의 소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호르몬이 과학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쉐링사가 1928년 시장에 선보인 세계 최초의 에스트로겐 약품인 프로기논® (Progynon)의 재료 역시 임신한 여성의 소변이었다.
쉐링은 태반과 임신한 여성의 소변에서 얻은 호르몬 추출물을 연구한 독일의 생화학자 부테난트(Adolf Friedrich Johann Butenandt)와 긴밀한 공동 작업을 실시했다. 이 공동 연구의 목적은 소변과 태반에 있는 호르몬 물질을 분리하여, 이것의 화학구조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1928
최초의 에스트로겐 제제
쉐링은 1928년에 세계 최초의 에스트로겐 약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프로기논®은 폐경으로 생기는 열성 홍조나 발한증과 같은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치료제는 처음에는 동물의 태반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었다.

 

프로기논®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생리학자이자 호르몬 연구가인 E. 슈타인나흐(Eugen Steinach)와의 공동 연구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슈타인나흐와의 공동연구는 동물의 고환과 난소를 가지고 약품을 생산할 목적으로 1923년 시작되었다. 슈타인나흐의 조수였으며 호르몬 연구 분야의 개척자이기도 했던 W.홀웨그(Walter Hohlweg)가 쉐링사의 호르몬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나중에 프로기논®을 만들기 위한 난포 호르몬은 임신한 말의 소변에서 구해졌다. 매년 난포 호르몬에 대한 수요가 50만 리터까지 늘어났으며 소변은 유럽 전역에서 모아졌다.
1932년 유기적 농축을 통해 생산된 피르기논®이 시중에 시판되었으며, 독일인 생화학자 부테난트와 미국인 생화학자인 도이시는 각각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프로기논®이 시중에 시판되고 4년이 경과되었을 때 연구자들은 어떤 물질이 프로기논®의 효과를 나타나게 하는지를 밝혀냈다.

 

에스트론, 에스트라디올, 에스트리올 등은 모두 에스트로겐의 일종이다. 에스트로겐은 난소에서 성숙한 난자의 난포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난포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5. 대공황 시기
1929


프로게스테론 연구

1929년 당시 연구자들은 난소의 황체(corpus luteum)가 난자의 착상과 임신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토끼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불임이었던 동물들이 황체 추출물 치료를 이용해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황체의 활성 물질에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에 진행된 일련의 실험을 통해 프로게스테론은 에스트로겐 때문에 성숙되는 자궁의 점액막과는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프로게스테론은 임신 상태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데, 태아의 분만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임신기간 동안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쉐링은 돼지의 난소에서 프로게스테론의 원료를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 작업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는데 5만 마리의 돼지 난소에서 소량의 물질만을 얻을 수 있었다.
4년 뒤에, 쉐링은 세계 최초의 프로게스테론 약품인 프로루톤(Proluton)을 시판했는데 이 약품은 유산을 막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29

점차 사용이 늘어나는 자궁 내 기구
1920~1930 사이에 최초의 자궁내 기구(IUDs)가 독일에서 개발되었다. 독일의 부인과 의사인 E. 그레펜버그(Ernst Grafenberg)는 누에의 내장과 같은 다양한 모양의 물질들을 사용하여 실험을 진행했다. 그가 만들어 낸 최종의 디자인은 그레펜버그라는 이름의 은으로 만든 피임링이었다.
오늘날 많이 사용되는 자궁내 기구들은 플라스틱이나 “T”자 형태의 것들이다. 사용 중인 대부분의 자궁내 기구(IUDs)들은 테두리 주변이 구리선으로 되어있다. 이 구리선 안에는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은으로 된 심이 들어 있다. 이 기구의 아래쪽에는 제거 시 편의를 위한 실이 부착되어 있다.
자궁내 기구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플라스틱만으로 된 자궁내기구(IUDs)는 수정된 난자의 자궁내막 착상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구리로 된 자궁내 기구가 피임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구리 이온이 정자와 난자의 움직임을 둔화 시켜 난자의 수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6. 2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
1931
안드로겐 연구

 

남성의 성호르몬(안드로겐)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쉐링의 직원들은 독일 경찰서에서 1만 5천 리터 상당의 남성 소변을 수집했다. 그리고 이 소변은 오일 형태로 농축되어 독일인 생화학자 부테난트(Butenandt)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농축을 통해 부테난트가 얻은 안드로스테론은 전체 15 밀리그램 뿐이었다. 안드로스테론은 비교적 생물학적 효과가 적은 호르몬이었다. 1932년 마침내 안드로스테론의 구조에 관한 내용이 발표되었다.
안드로겐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소위 계관 실험(닭볏 실험)이라 불리는 것을 실행하였다. 이 실험은 거세된 어린 수탉에게 안드로겐을 주입하여 그 닭의 볏 성장을 관찰하는 것이다.
쉐링과 부테난트는 공동연구를 통해서 안드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합성 작업을 성공시켰으며, 스위스의 화학자 L. 루직카(Leopold Ruzicka)는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동 년도에 최초의 안드로겐 제품이 시판되었으며 테스토스테론이 결핍된 남성의 치료에 사용되었다.

 


1931

 

뇌하수체의 기능

 

1931년 비엔나의 과학자 L. 크라울(Ludwig Kraul)은 여성의 성호르몬 에스트론이 뇌하수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했다.
1934년 쉐링사의 과학자 W. 홀웨그(Walter Hohlweg)와 K. 준크만(Karl Junkmann)은 간뇌라고 불리는 뇌의 일부분에 존재하는 시상하부가 난소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쥐 실험을 통해 두 학자들은 시상하부가 뇌하수체에 호르몬을 분비하고, 시상하부는 난소에 또 다른 호르몬을 보내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하수체가 분비하는 호르몬은 성선자극호르몬(gonadotropin)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이 여성의 난소와 남성의 고환과 같은 생식선(gonad)의 기능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성선자극호르몬은 난소 및 배란에 의해 만들어지는 호르몬 생산을 유도한다. 성 호르몬은 혈류 속으로 분비되게 되는데 혈류는 이 호르몬들을 자궁, 시상하부 및 뇌하수체 등과 같은 적절한 기관으로 옮기게 된다. 혈관 속에 성 호르몬의 양이 증가하면 성선자극호르몬의 분비가 제한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몸은 필요한 양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절된다.
호르몬의 “음의 피드백”이라 불리는 이런 작용을 초기에 인식함으로써 호르몬 피임법이 개발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성 호르몬의 존재는 시상하부 및 뇌하수체의 작동을 제한한다. 뇌하수체 호르몬이 없다면 배란이 일어나지 않으며 임신도 이뤄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1932

난포 호르몬 에스트라디올 생산

 

1932년 쉐링사의 화학자인 E. 쉐벵크(Schwenk)와 F.힐데브란트(Hildebrandt)는 에스트라디올을 생산하는 데 성공하였다. 에스트라디올의 생산을 위해 두 사람은 성호르몬 에스트론의 화학구조를 변경했다. 이미 1932년 초 독일인 생화학자 부테난트와 미국인 생화학자 도이시가 에스트론의 화학 구조를 밝혀내 바 있었다.
에스트론 및 에스트리올과 함께 에스트라디올은 에스트로겐의 일종이다. 그 중 에스트라디올이 가장 강력한 에스트로겐이다. 에스트로겐은 난소에서 성숙하고 있는 난포에서 주로 생산되기 때문에 '난포 호르몬'이라고 불린다.
에스트로겐은 성숙하게 되는 사춘기, 골반, 허벅지 등에 지방이 모이거나 가슴이 커지거나 체모의 분포의 변화 등과 같은 2차 성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춘기에 에스트로겐이 증가하면 뼈의 경직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더 이상의 수직 성장을 멈추게 된다.

 
성적으로 성숙한 여인들에게 있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은 생리 주기와 임신을 조절해준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이런 작용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뼈의 건강을 유지해주고 몸, 목소리, 성욕 등의 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에스트로겐은 피부의 콜라겐과 점액질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스트라디올은 폐경 증상 치료 및 골다공증 예방에 사용되는 많은 약품들에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성분이다. 

 

 

1933
최초의 프로게스테론 제제

1933년 쉐링은 최초로 프로게스테론 제제의 프로루톤®을 선보였다. 이 약품은 유산의 위험을 감소시켜 주었다. 프로루톤®을 만드는데 사용된 프로게스테론은 돼지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쉐링은 이미 1928년에 에스트로겐 제제인 프로지논®을 상품화한 적이 있었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제제의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부인과 병들의 진료와 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그 결과 독일인 부인과 의사 칼 카우프만(Karl Kaufmann)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주기적 및 순차적인 방법으로 처방함으로써, 불임이었던 여성들이 규칙적인 생리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테스트의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테스트는 무월경증(amenorrhea)의 원인을 밝혀준다. 호르몬 조절을 통해 규칙적인 월경이 회복된다면 배란 불순으로 인해 무월경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1934

최초의 안드로겐 제제
1934년 쉐링은 최초의 안드로겐 제제인 프로비론®을 시판했다. 이 제품은 남성 성호르몬으로 남성다움과 성능력을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프로비론®은 생식능력저하, 성욕감퇴, 무력감, 근육퇴화, 골다공증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결핍 환자에게 처방되었다.
1934년은 황체가 생성한 호르몬의 구조가 독일인 생화학자 부테난트와 쉐링사의 W. 홀웨그 및 U. 웨스트팔에 의해 밝혀진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연구자들은 프로게스테론의 합성물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발전과 함께 더 이상 프로게스테론을 돼지 난소에서 구해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1931년의 빈 출신의 과학자 L. 크라울(Ludwig Kraul)의  연구 덕택에 쉐링사의 과학자 W. 홀웨그는 시상하부, 뇌하수체 등과 같은 뇌의 일부와 난소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조절하는 호르몬 시스템을 확인했다. W. 홀웨그는 월경 주기 중반에 혈중에 포함된 다량의 에스트로겐이 뇌하수체에게 황체형성호르몬(LH)을 분비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황체형성호르몬이 분비되면 배란이 일어나게 된다. W. 홀웨그의 발견으로 호르몬 피임법의 진일보한 전기가 마련되었다. 황체형성 호르몬의 분비를 차단해서 배란을 막는 것이 피임약의 숨겨진 활동 원리인 것이다.

 

 

1938

최초의 에티닐 에스트라디올
1938년 한스 인호펜(Hans Herloff Inhoffen)과 그의 동료 월터 홀웨그는 성 호르몬 에스트라디올의 화학적 변형인 에티닐 에스트라디올을 개발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에스트라디올의 효과는 경구용으로 사용되었을 경우 그 효과가 아주 미미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에티닐 에스트라디올는 복용했을 경우 그 효과가 아주 컸다. 따라서 이 물질이 먹는 피임약에 쓰이는 에스트로겐 성분 중에는 가장 많이 쓰이게 되었다.

1938년 같은 해 쉐링사의 두 명의 과학자들은 에티닐 에스트라디올을 사용하여 최초로 효능 좋은 황체 합성물(프로게스틴)을 만들었다. 이것은 경구용 피임약 개발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7. 2차 대전 이후 시대

1951

최초의 효능 있는 먹는 프로게스틴
1951년 가을 오스트리아인 칼 제라씨(Carl Djerassi)에게 위임을 받은 루이스 미라몬테스(Luis Miramontes)는 스테로이드를 합성하여 지금까지 개발된 합성 황체 중에 가장 효과가 입증된 실험실 제제를 만들어냈다. 제라씨는 1951년 11월 이 제제에 대한 특허권을 출원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 폴란드 태생의 화학자 F. B. 콜튼(Frank B. Colton)은 미국 제약회사 썰(Searle)에서 황체가 분비하는 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의 변형물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합성 호르몬은 모두 경구용으로써 효과가 크다는 특징이 있었다. 자연 상태의 프로게스테론보다 수백 배의 효과를 보였다. 이 당시만해도, 콜튼이나 제라씨 모두 이 물질들이 피임 도구로 사용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두 물질의 성분상의 유사성 때문에 이 화학자들은 자신이 이 물질의 발명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분쟁은 법정 싸움으로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1955

호르몬 피임법의 개척자들


오늘날 형태의 먹는 피임약이 생겨난 데는 여성 두 명의 공이 크다. 미국인  M. 생어(Margaret Sanger)와 캐더린 맥코믹(McCormick)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40년 동안 산아제한을 위한 캠페인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원치 않는 임신이 가져오는 불행, 특히 저소득층이나 이주민 가정에서의 불행을 덜어주는 데 일조를 하고 싶어했다. 이런 이유로 그녀들은 여성들이 언제 임신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피임법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이미 17살 때, 마가렛 생어는 당시 번식 생물학의 권위자였던 G. 핀커스(Gregory Pincus)를 만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피임법을 찾아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케더린 맥코믹은 피임법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였으며 핀커스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도록 위임했다. 핀커스는 불임여성 치료의 경험이 있는 부인과의사 J. 락(John Rock)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였다.
1955년 핀커스와 락은 합성 프로게스테론을 매일 일정량 경구용으로 투약하여 배란을 억제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같은 해 두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성분을 조합하여 만든 먹는 피임약들을 실험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핀커스를 먹는 피임약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1960년이 되어서야 먹는 피임약이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8. 먹는 피임약 시대의 개막

1960
미국에서 시판된 최초의 경구피임약 에노비드®


1960년 5월 11일은 미국 제약회사 썰(Searle)이 최초의 먹는 피임약을 시중에 시판한 날이다. 에노비드®-10은 황체호르몬 합성물인 프로게스틴과 합성 에스트로겐을 포함하고 있는 제제였다.
미국의 번식 생물학자 G. 핀커스와 부인과 의사 J. 록은 지난 1950년대부터 배란을 막는 호르몬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여 이 분야 발전에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 이 연구는 G. 생어와 K.D. 맥코믹의 지원으로 가능해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애 전체를 진보된 형태의 피임방법을 개발 하는 것에 쏟았으며, 1950년대에 먹는 피임약 계약을 G. 핀커스에게 최종적으로 의뢰했다.
1960년에 피임약으로 승인을 얻기까지, 1957년 시판된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는 생리불순 치료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에노비드®는 커다란 부작용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시판되지 못했다.
먹는 피임약이 상용화되면서, 윤리문제, 성 도덕, 여성의 역할론 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제기되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먹는 피임약의 확산을 멈출 수는 없었다.
먹는 피임약은 여성해방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제 여성들은 임신을 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 냉전 시대
1961

유럽 최초의 경구 피임약 아나보라®


 
1961년 1월 1일 쉐링은 유럽 최초의 경구 피임약 아나보라®를 출시했다. 독일에서 이 약이 선보인 것은 이로부터 5개월 후였다. 아나보라®는 유럽에서 판매된 최초의 호르몬 피임제였다.
아나보라®라는 이름은 “배란 없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먹는 피임약의 가장 중요한 효과를 직접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 포장을 한 이 피임약의 가격은 독일화폐로 8.50마르크였으며, 알약들은 현재의 피임약보다 6배 정도의 활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당시에는 결혼한 여성에게만 처방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먹는 피임약은 개선되어 왔다. 사용된 호르몬의 양은 줄어들었으며 다양한 단계에 알맞은 피임약이 개발되어 여성의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호르몬 변화에 맞추어 개선되었다. 기타의 호르몬들도 개발되었다. 새로 개발된 호르몬 중에는 임신 예방 차원을 넘어 여드름이나 월경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의 치료와 같은 부가적 효과를 갖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먹는 피임약은 오늘날 여성들이 사용하는 피임법 중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된 것이다.

 

1962

프로게스틴이 건강에 미치는 효과


 
프로게스틴이라는 명칭의 호르몬에는 황체가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프로게스테론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모든 형태의 합성 호르몬들이 포함된다. 임신 예방을 주로 담당하는 물질인 프로게스틴은 피임은 물론이고 기타 다양한 목적으로 처방될 수 있다.
1962년 쉐링의 과학자 F. 뉴만(F. Neumann)은 프로게스틴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progestin cyproterone acetate)를 개발했다. 이 물질은 피임 효과와 함께 항-안드로겐 역할을 하여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이 물질은 여성의 여드름, 피질과잉분비, 다모증 등의 증상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데, 이런 증상들은 모두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이 과다분비 되어 발생한 것들이다.
1978년 호르몬 피임제제인 다이안®이 시판되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안드로겐 관련 증상의 치료에서 표준적인 처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를 통해 쉐링은 임신에다 부가적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프로게스틴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물질을 만들어 냈다. 또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쉐링은 항-알로테스테론 기능이 있는 프로게스틴 드로스피레논(Drospirenone) 개발하였다. 이 호르몬은 체중 증가와 부종을 일으키는 에스트로겐 관련 체액저류(fluid retention) 현상을 예방해준다. 활성 성분인 드로스피레논은 2000년 시판된 먹는 야스민®의 주성분 중의 하나이다.

 

 

 

10. 포스트모던 시기
1978

다이안® : 피임과 여드름 치료

 

 

쉐링은 1978년 다이안®을 시판하면서 신개념의 치료법을 확립했다. 쉐링의 다이안®은 활성 성분인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가 함유된 에스트로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는 여성의 기관에서도 생성되는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의 영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의 등장으로 남성 호르몬 과다나 남성 호르몬의 민감성이 커져서 발생하는 호르몬 장애를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여드름, 피질과잉분비, 다모증 등의 증상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약품들이 있었다. 이러한 효과와 더불어, 다이안®은 수정단계에 있는 난자가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하게 하여 임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1985년 에스트로겐의 함량이 적어진 다이안®®-35가 시중에 시판되었다.

 

 





 

11. 국제화 시대

1997

호르몬 코일 미레나®

 

 

1997년 쉐링은 미레나®를 시판하면서 피임법에 혁명을 이뤄냈다.
코일로 된 자궁내 기구(IUS)인 미레나에는 호르몬이 들어있다. 미레나®에는 레보노르게스테롤이라는 황체 호르몬이 실린더 모양의 플라스틱 속에 저장되어 있다. 이 실린더 모양의 저장소는 코일이 자궁에서 고정되게 해주는 T- 모형의 틀에 부착된다.

자궁내 기구(IUS) 속에 들어있는 호르몬은 자궁 속에 바로 삽입되어 미량으로 지속적인 분비가 이뤄진다. 호르몬 코일의 설치 여부는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설치 첫 날부터 아주 안전한 피임이 가능하다. 이 자궁내 기구는 자궁에 설치 후 약 5년간의 수명을 유지한다.
미레나®는 피임 효과가 믿을만하고 장기간 미량의 피임약을 투여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알맞은 피임법이다. 이 기구는 특히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을 여성들에게 알맞다. 또한 미레나® 출산이나 수유가 끝난 여성들이 사용할 수도 있다.




2000

야스민®: 단순한 피임을 넘어

쉐링은 소량의 먹는 피임약 야스민®을 시중에 내놓았다. 야스민®에는 에스트로겐과 함께 드로스피레논(drospirenone)이라는 독특한 성분이 추가되었다. 드로스피레논은 피임효과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에스트로겐을 섭취하는 많은 여성들이 겪는 체액저류(fluid retention) 현상과 체중 증가를 막아준다.
드로스피레논은 부종, 기분의 급격한 변화, 두통 등과 같은 생리전 증후군에도 효과가 좋다. 또한 피부가 개선되는 효과도 있다.

 


2004

먹는 피임약으로 해방된 여성

“만일 우리가 심사숙고 하여 의도한 수준까지만 자녀를 출산할 수 있다면, 그리고 생래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연과 엮이게 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것은 인간의 위대한 승리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류가 복종해온 자연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분명한 사건이 될 것이다.”
1898년 신경전문의 S.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희망을 피력했는데, 그의 이런 희망은 50년이 넘어서야 결실을 보게 되었다.
현대적 산아제한의 방법 덕택으로, 오늘날 남성과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욕망과 성적욕구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인류역사에서 임신과 성을 최초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호르몬 피임법의 등장 때문이었다. 먹는 피임약은 피임방법의 안전성과 신뢰성에 대한 기준이 되었다.

현대적 피임법의 등장으로 진정한 의미의 계획된 출산이 가능해졌다. 사랑을 통한 관계 속에서 자녀를 낳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은 출산한 아동의 행복한 성장을 위한 기본 바탕이다. 이제 출산은 우연이 아닌 선택인 것이 되었다.

 

 

 

 

12. 미래


2010

남성용 호르몬 피임약

2003년 쉐링은 남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호르몬 피임약 개발을 시작하였다. 이 피임약의 핵심적 원리는 여성 호르몬 피임법과 동일하다. 호르몬을 투여하여 남성의 정자 생산을 줄여, 임신 확률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남성용 피임약”에 대한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2010년경까지 남성용 피임약이 개발되기는 어렵다. 최초로 시도될 이 방법은 테스토스테론의 주입과 프로게스틴 이식으로 구성될 것이다. 이 방법의 개발을 위하여 쉐링은 현재 오르가논(Organon)사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의 전망이 밝아 보이긴 하지만 최초의 남성피임약이 2010년 이후에야 시중에 시판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이 자료는 Bayer Schering Pharma 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