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케이 팩스 (K-PAX, 2001)

Wednesdays 2010. 10. 27. 13:09





영화를 보고 옳고 그름을 분석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 싶게끔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감독이 뒷짐지고 앉아 관객의 그런 반응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짜여진 각본대로 수순을 밟게 되는 거다.

몇가지 논란이 될 법한 장면들을 편집하지 않아 '프롯이 외계인일 것이다.'에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결국은 영화를 두번 보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프롯이 외계 K-PAX란 행성에서 왔다해도

닥터 마크의 끈질기고 애정어린 상담치료가 영화의 대부분인 만큼...

프롯이자 로버트 포터의 상태를 분석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로버트 포터. 또한 자네지. 로버트 포터와 자넨 같은 사람이야."

"말도 안돼요. 난 인간이 아니에요."

"그렇게 인정하기 힘든가?"

"내 고향이 K-PAX란 것을 당신이 인정한다면, 나도 그걸 인정하죠."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망상.

일시적인 망상이라고 하기엔 5년이나 지속되었고,

의식이나 지적 능력이 유지되지만 최면 치료시 특정 인지 결손을 보이는 것과

외계인이라는 사고의 왜곡을 볼 때 얼핏 정신분열증을 떠올릴 수 있다.
 

해리장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다른 인격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면...

일상적인 망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중요한 개인정보를 회상하지 못한 것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소 도살업을 하는 아버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별자리에 대해 배우고 꿈을 키워나갔지만, 결국 그는 망치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딸의 충격적인 살해 장면...

마치 아버지와 자신이 늘 도살하던 소처럼 유혈이 사방에 낭자하고...

그에게서 정신적 트라우마가 되기에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체계화된 망상장애 중에 '편집형 정신분열증'의 유명한 예는 총기난사를 했던 '조승희'다.

물론 조승희의 경우에는 다양한 인격장애와 피해망상 등으로 복합적인 정신장애를 겪었다고 알려져 있어

프롯과 비교하긴 힘들다.

그나마 조금 유사한 사례가 있다면 전형적인 망상장애를 앓은 '다니엘 파울 슈레버'를 들 수 있겠다.

한국어로도 번역이 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보면, 당시 독일의 최고급 엘리트 지식인이며,

지방법원장을 지낸 42살의 슈레버가 의원 선거에 낙선하면서 그 해 겨울 처음으로 정신병이 찾아 들었다.

첫 발병 이후 완치되어 판사 생활을 8년이나 지속했으나, 다시 재발하여 자신이 여자로 변형될 것이라는 망상과

신과 접촉해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낳을 것이라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망상에 시달렸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는 아버지 컴플렉스와 동성애 소망의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슈레버의 편집증적 망상 체계는 프롯의 망상과 조금은 닮은 점이 있다.

한겨레 신문의 고명섭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는 1960년대 펴낸 인류학적 저서 '군중과 권력'의 마지막 을

슈레버의 사례의 분석으로 채웠다. 슈레버는 망상 속에서 자신이 주변의 수많은 영혼들을 자기 내부로 빨아들여

몸 안에서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프롯이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눈에는 눈'에 가장 적절히 반응한 로버트 포터의 허물을

자신의 내부에서 파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망상'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마지막 장면에서 프롯이 빠져나간 로버트 포터가 온전한 모습이 아닌 것을 보고,

(초점 없는 눈에, 마치 치매 환자처럼 멍한 모습...)

외계인이라 한들 결국 그의 자살만 막았을 뿐 그 어떤 치료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프롯이 외계인이라는 감독의 의도보단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