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거짓말 (Secrets & Lies, 1996)
마이크 리 감독은 네이키드(Naked, 1993)에 이어 96년 이 작품으로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그랑프리)을 두 번째 안았다.
배우를 다루는 솜씨가 훌륭하다고 알려진 그의 영화엔 유독 연기자들의 수상이 많다.
네이키드에서는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와 사랑에 빠지는 시인 베를렌느역, 데이빗 듈리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이 작품 <비밀과 거짓말>의 주연을 맡은 브렌다 블리신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매우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였다.
고맙게도 누군가 파일을 공유해 주는 바람에 늦게나마 이 영화를 접하게된 나는...
지극히 사적인, 그리고 지독히 감정적인 리뷰를 조심스럽게 토해 놓을 생각이다.
이 영화엔 주인공이 4명이다.
부유한 사진사 모리스와 그의 아내 모니카. 모리스의 누이 신씨아와 그녀의 딸 록산느.
그 주인공들 사이에 이미 내재되어 있던 갈등의 존재를 외부로 발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신씨아의 버려진 딸...
흑인 여성 홀텐스.
리뷰에 줄거리를 적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지독히 감정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영화인지라...
고된 인생을 살았지만, 원숙함은 찾아볼 수 없는 나약하고 철없는 신씨아 - 그녀는 버림받은 것으로 나온다. 모두로부터....
10살에 부모를 여의었다. 유아성욕의 단계를 거쳤다고는하나 잠복기였던 10살에 일종에 외상을 입은 그녀는
사춘기였던 15살에 원치않는 흑인과의 성관계로 인해 리비도의 욕구좌절로 인한...퇴행을 경험한 것 같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어리광 섞인 행동과 10살 아이 같은 목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극단적인 불만족의 표출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브렌다 블리신의 연기는 가히 일품이었다.)
이후 업어키운 동생 모리스로부터도, 이후 록산느를 임신시킨 남자로부터도... 버림받게 된 그녀는
유일하게 자신이 버렸던 존재... 16살에 낳은 자신의 딸... 홀텐스를 만났다.
애비도 모르는 자식...이란 타이틀 때문에 어머니인 신씨아를 증오하는 딸 록산느 - 그녀는 거리 청소부다.
육체적 타격을 입히지 않을 뿐... 그녀는 적의와 증오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자기 파괴적 행동을 행하는데...
마치 애비도 모르는 자식은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제 어미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홀텐스가 자신의 이복 언니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분노는 극에 달해
신씨아를 향해 '애비없는 자식을 어떻게 둘이나...낳을 수 있느냐'고 소리치게 된다.
하지만...
록산느는 아버지가 있었다. 다만, 아버지가 제 어머니를 버렸을 뿐...
애비도 모르는 자식은... 홀텐스였다.
아버지도 모르고, 어머니에게마저도 버려진 여자...
실제로 사연이 나오지는 않지만... 신씨아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으로 유추해보면
15살에 홀텐스를 임신시킨 그 흑인 남자와의 성관계는 '강간'이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눈치챈 듯한 홀텐스는 비정한 눈빛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자에 대한 연민으로 신씨아를 끌어안는다.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코 홀텐스였다.
그녀가 가진 성숙함과 그녀가 보여준 용서와 그녀가 지키고 있는 유머는...
나를 눌러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동생을 뺏겼다고 생각한 신씨아는, 모니카가 일부러 동생의 아이를 갖지 않고, 사치스럽게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에... 15년간의 불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지막 남은 화해가 이루어진다.
모리스의 곁의 세 여자...
신씨아, 록산느, 모니카는 서로를 증오했다.
비밀과 거짓말들...
틈이 보이지 않던 빠듯한 그들 사이의 담벼락은 홀텐스라는 극단적 갈등의 존재가 나타남으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오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을 뿐...
이를 비밀이라 한다면...
비밀이 지켜지는 동안엔... 거짓이 배회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