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Wednesdays 2018. 5. 14. 21:19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책을 덮었다.

덮었다는 표현이 맞다.

책을 읽었다고 하기엔 머리에 남은 것이 없고,

다시 읽는다 한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그 '형체'를 알아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실루엣이라도 잡아볼 요량이면,

<부조리극>의 배경을 알아야했다.

 

 

사실,

인간 개인의 삶을 뒤져보면 대부분 시대에 순종적이다.

정치와 사상에 분개하고 

세상의 뉴스에 휘둘리는, 머릿속에 격랑은 있을지언정

행동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대승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인간은 순종적이지 않다.

문화와 사상, 정치와 이념, 종교와 철학 등등은

유행이 있었고,

인간의 변덕 때문이든, 무조건적인 반항심 때문이든 

다른 유행이 만들어지면 그 시대의 인간들과 함께 잊혀졌다.

(종교는 잊혀졌다기 보단, 점점 적합하게 변해왔다는 편이 맞다.

글이 생기면서 기록되었고, 종이가 발명되면서 퍼졌고,

개혁가들을 통해 수정되었고, 국경을 건너면서 이름이 바뀌기도 했으니까.)

 

그말인즉,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고대의 신들과

이상적으로 미화된 영웅의 모습을 그려대던 사람들이

노동자와 농민의 지위 상승과 맞물려

그들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리얼리즘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논리적 합리주의 사상 또한 

1, 2차 세계대전이란 파괴와 혼란을 초래하자,

인간은 이런 '사실주의' 마저 파괴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부조리극>을 탄생하게 했다.

 

사뮈엘 베케트는 전쟁중에 피난을 다녀야 했고,

전쟁을 겪으며 느낀 환멸을 표현하고 싶었을 테고,

환멸을 표현하기엔 형식을 파괴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조금은 익숙하지만 

목적없이 떠도는 동문서답형 만담개그를

1950년대 관객들이 겪었을 때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듯하다.

어쩌면 어리둥절하다 뛰쳐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부연 설명 없이 시작하고,

끝나지 않을 부분에서 댕강 잘리듯 끝나고,

배우들에게 집중할 수 없도록

귀로 듣고도 해석할 수 없는 대화가 진행된다.

- 그 중에서 압권은

엇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더듬고, 끝맺지 못하는 럭키의 대사다.

너무도 유쾌하면서도 뭔가 불쾌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모순을 경험한다.

 

예상컨대

그 시대의 관객들은 연극을 두 번 이상 봤을 것이다.

어이 없이 뒷통수를 맞고 나와 한번 더 연극을 찾았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눈먼 장님이 되어 나오는 걸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부조리극답게 답답함의 이유는 많다.

찾으면 찾을수록 한 두개씩 더 찾아질 정도로

계속 답답하다.

 

'고도'라는 대상의 부재로 인해

<기다림의 착실함>이 무의미해지는 게 그 첫번째다.

특히 블라드미르가 그러했다.

블라드미르는 쓸데없이 매번 '기억'해냈다.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사실을...

그 착실함이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 에스트라공을 발목을 잡았고,

때문에 '고도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기회'를 누릴 수 없게 된다.

 

블라드미르는 극 중에 기억력이 제일 낫다.

(사실 이조차도 명확하지 않지만...)

'고도'의 의사를 전달하는 소년보다도...

 

여기서 두번째 답답함이 온다.

유일하게

'고도'의 존재를 알고 있고, '고도'의 의도를 알고 있는 소년이

그 둘과 매한가지로 총명하지 않다.

결국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게 모든 이들의 '기억'에 손을 대버린 것이다.

 

의성어는 무작위로 나열되어도 불편하지 않다.

전달되는 것으로 그 의미를 다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언어란 '전달'의 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뜻'에 이르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잘 짜여진 언어를 쓰고도 절묘하게 형식이 으깨져있고,

적합한 문장을 나열했는데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머리를 쥐어짜다보면 공포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나는 사실 여러번 돌려 읽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베케트 스스로도 '고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굳이 나따위가 그걸 찾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나 연극의 의미나 가치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을 거다.

 

연극의 형식, 언어의 표현, 인물의 특성,

시간의 개념, 기억의 개연성...

수도없이 나열할 수 있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과

제 3차 대전을 치른 게 아닐까.

 

베케트는 연극을 올리며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시작되어

핵무기 한방에 종결된 전쟁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피난처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종전선언.

 

무엇 때문에 서로를 물어뜯었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

그 시대를 살아낸 블라드미르들이 보기엔

딱 적합한 연극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