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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Gus ban Sant) - 엘리펀트 (Elephant, 2003)

Wednesdays 2014. 1. 10. 13:08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에 위치한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던 그날,

 

한국 국적의 '조승희'가 범인으로 밝혀진 순간, 온 국민들의 위축되었던 그 모습들이 기억난다.

 

마치 자신의 친구, 가족, 또는 이웃이 그런 잘못을 저지른 양,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이란 나라에 제대로 삿대질 한번 하지 못했다.

 

사실, 캠퍼스내 총기난사 사건은 버지니아 공대가 처음은 아니다.

 

1966년 텍사스주 텍사스 대학 구내에서 찰스 휘트먼이,

 

1998년 아칸소주 요네스보로의 웨스트사이드 중학교에서 두명의 중학생이,

 

1999년 콜로라도주 리틀톤 컬럼바인 고교에서 2명의 고교생이... 여러 동료 학생과 교사를 살해했다.

 

마지막 언급된 컬럼바인 사건을 처음으로 영화로 만든 것이

 

볼링 포 컬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의 감독 마이클 무어다.

 

 

"모든 위대한 코미디언들은 사회적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자한 매우 화난 사람들이며,

 

그들이야말로 바로 코미디 장르의 전통을 수호한 이들이다"(마이클무어)

 

 

그의 다큐멘터리는 실로 객관적이고, 신랄하다. 

 

당시 매스컴에서 컬럼바인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폭력영화(매트릭스),

 

헤피메탈(마릴린 맨슨) 등의 내용을 조소하기라도 하듯 총기 사건이 있기 전 그들이 했던 것은

 

단지 '볼링'일 뿐이었다는 조롱을 제목에 싣고, 영화에 '미국'이란 나라를 통째로 들고 나왔다.

 

커튼 안에 코끼리의 다리 하나만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코끼리를 보여준 것이다.

 

 

2년 후 거스 밴 샌트가 컬럼바인 사건을 다룬 <엘리펀트>라는 영화를 내놓았을 때

 

걸작이냐, 졸작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카메라의 대상의 되는 세계의 모습, 그것을 옮겨 놓는 ‘시네마틱한 리얼리티’의 본질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보여 주었기에

 

밴 샌트의 최고의 걸작이란 평을 이끌어 냈다. (FILM2.0의 장병원 기자)

 

그가 재해석 했다는 알란 클라크(Alan Clarke)의 1988년 <엘리펀트>라는 단편영화에서 엘리펀트는

 

‘거실의 코끼리’라는 서양의 우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스 반 산트는 이 제목을 차용하며 인도의 오래된 불교 설화를 떠올렸다.

 

 

맹인모상 []

 

-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한다는 말

 

거실의 코끼리(서양 우화) 

 

- 모든 집에는 코끼리가 있다. 코끼리를 어렸을 때 집안으로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문으로 드나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코끼리는 다시 문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결국 작은 코끼리가 거구가 되어

 

작은 움직임에도 집은 흔들리고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거스 밴 샌트는 엘리펀트에서 많은 영화들과 달리 다큐멘터리 방식, 리얼리즘을 취하지 않았다.

 

'상실'이 그의 영화 인생의 테마라고 한다면, 엘리펀트는 그 중 최고다.

 

카메라의 시선은 늘 배우의 뒤에 자리잡고 있어, 후반부에 들어서면 마치 현미경을 오래 들여다 본 후에 오는 현기증 같은 것이

 

밀려올 때가 있다. 색다르거나, 뛰어날 것 없는 일상을 '나레이션 없는 인간극장'처럼 연출한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

 

밴 샌트는 자신의 관점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채 모든 일상을 그려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롱테이크로 잡는 장면에선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으려는

 

가상한 노력이 보였다. 그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한번쯤 주인공의 눈빛을 보여주어도 무방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범행동기는 총기소유, 마릴린 맨슨, 폭력게임, 가족붕괴, 왕따, 미국... 그 무엇도 될 수 있었다.

 

나는 피아노 악보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엄마의 맛없는 파이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엘리펀트다.

 

맹인모상...

 

 

 

 

벤허의 주인공이었던 찰톤 헤스톤이 미국내 총기협회 회장이라해도,

 

거구의 코끼리가 피로 얼룩진 영악한 '미국'이라해도,

 

잔혹한 주인공이 "어느쪽을 먼저 죽일까요"라고 말하며 건조하게 슈팅게임을 했더라도,

 

 

영화란... 지극히 영화스러운 것이란...

 

그 어떤 감정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하기에...

 

누군가의 의견을 대변해 주는 것이 '영화'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엘리펀트를 보고난 이들은 결말을 주지 않는 그 모호함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영화의 장병원 기자가 말한 <시네마틱한 리얼리티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설과 고발을 목적으로 삼은 <볼링 포 컬럼바인>은 영화로서 최고의 걸작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엘리펀트는 우리나라에 2004년 8월 27일 개봉해 조기종영되었다가

 

9월 24일부터 열흘간 하이퍼텍 나다에서 단독 재개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