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폴리 감독.
<4살의 나이에 TV 드라마에 출연했던 캐나다 아역배우 출신의 그녀는 나없는 내인생(My Life Without Me, 2003)에서
시한부를 선고받고 삶을 정리해가는 앤의 역할을 맡아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당시 오디션을 보러 온 사라 폴리를 만나는 순간, 감독 이자벨 코이셋은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라는 앤을 연기한 것이 아니었다. 앤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녀가 감독으로서 첫 장편에 도전한 영화.
'닥터지바고'의 줄리 크리스티와 남편 그랜트 역을 맡은 고든 빈센트 같은 관록 있는 배우의 공로도 있겠지만,
이런 수작을 빚어낸 것에 대한 찬사는 그녀가 받아야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더러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과 그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남편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영화>
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리하여 너무도 감동적이고, 눈물이 날것 같았다...고 표현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절대!!!
감독의 의도는... 29살의 젊은 배우 출신의 사라 폴리는 그것을 의도한 것이 아니다.
파격적인 스타일과 짜릿한 반전을 넣지 않은 것으로, 장면마다 한 문장씩은 없어진 듯한 그 절제된 대사만 보아도...
그녀의 의도가 상투적인 것이 아님은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기억을 잃어가던 피오나가 요양원을 가기로 결심하고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중 이런 말을 한다.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안돼요. 우리가 얘기하지 않은 것들요.
당신은 날 떠나지 않고...여전히 날 사랑했어요. 그 많은 유혹속에서도...(중략)...
그리고 그 멍청한 여자애... 바보 같은 베로니카... 그 나이 때 여자애들은 항상 자살할거라 말한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했죠.
내겐 내 인생의 약속이었어요. 우린 여기로 이사왔고... 그게 당신이 내게 해준 거에요."
20년전 교수를 하고 있던 남편 그랜트에겐 베로니카란 여자가 있었고,
그는 아내를 버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오나의 짧은 독백이 의미없게 지나가는 것 같지만...여기에 모든 단서가 다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오나가 기억이 돌아왔을 때 그를 향해 '당신은 날 절대 버리지 않았어요'란 말을 세번이나
읊조리는 동안 피오나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보면, 그녀가 침묵했던 20년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음이 짐작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기억은 있었다.
남편 그랜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첫 사랑으로 추정되는... 오브리라는 남자...
"웃긴 건 예전에 알던 사람이라는 거에요. 저사람 우리 할아버지 철물점에서 일했어요. 우린 맨날 장난치곤 했는데
저 사람 쑥맥이라 데이트 신청을 못하는 거에요. 그러던 어느 주말에 결국 무도회에 절 데려갔는데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우릴 집으로 데려갔죠. 전 여름만 되면 갔어요. 할아버지댁에요. 호숫가에 있는 집이었죠."
웃긴 건... 베로니카가 죽고... 그들이 이사온 집이 바로 그 호숫가에 있는 할아버지 집이었다.
그녀의 독백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건... 정말 나만의 착각일까...
"우린 여기로 이사왔고, 그건 당신이 내게 해준 거에요."
아내에게도... 기억은 있었고,
남편에게도... 기억은 있었다.
서로 말하지 않은 것들...
아내는 남편의 기억을 참고 살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기억을 알지 못했다.
난 이 영화가 잔잔한 러브스토리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44년을 함께 산 부부...사이에도...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그 것이 '사랑'이란 것의 실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또다시 나의 해석이 틀렸다 하더라도... 이 허망한 기분은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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